“잘 선별된 수출품 ‘아기’들, 가장 충격적인 사진”

<아이들 파는 나라>, 우리가 몰랐던 ‘국제입양’의 진짜 이야기 [조성은 기자]

가난한 카지노사이트 나라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려져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아이. 그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선진국’의 좋은 부모에게 입양된다. 아이는 어두운 과거를 잊고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그렇지만 가슴 속 한켠에는 한국인인 자신의 정체성에 강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고국에 금의환향한 아이는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친엄마를 찾아 눈물의 상봉을 한다.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국제입양에 대한 이미지다. 그런 줄 알고 있었다. 좋은 나라 가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미국에서 강제추방당한 입양인이 이태원에서 노숙자로 발견되기 전까진 말이다.
지난 65년 간 20만 명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는 비행기에 태워 보낸 아이들의 삶 그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책 <아이들 파는 나라>(오월의 봄 펴냄)은 국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동원해 개인의 삶을 제도 밖으로 밀어냈는지에 대한 고발이다. 지난 2017년 <프레시안>이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를 심층 취재한 기사를 보완해 엮었다. 집필에 <프레시안>의 전홍기혜 기자와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사무처장, 그리고 한국계 입양인 제인 정 트렌카 작가가 참여했다.(☞기사묶음 바로보기)
국제입양은 현재도 이어지는 문제
지난 13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디어라이프 북카페에서 <아이들 파는 나라> 북토크가 열렸다.

▲13일 서울 마포구 디어라이프 북카페에서 <아이들 파는 나라> 북토크가 열렸다. 왼쪽부터 전홍기혜 기자,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사무처장, 제인 정 트렌카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트렌카 작가는 “나 역시 입양인이고 나의 입양 절차도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자신의 이야기로 한국 국제입양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입양인으로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온 그는 <인종 간 입양의 사회학>(뿌리의 집 펴냄), <덧없는 환영들>(창비 펴냄) 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트렌카 작가는 “한국이 65년 동안 입양 보낸 20만 명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입양인들은 한국이 강제로 끊어버린 나의 연속성, 정체성에 대해 평생에 걸쳐 고민한다. 이건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

▲제인 정 트렌카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아이들 파는 나라>의 말미에는 제인의 친구 폴(가명)의 이야기가 수록돼있다. 트렌카 작가처럼 미국으로 입양됐던 폴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다. 폴의 이야기를 하던 트렌카 작가는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폴은 겉으로 보기에 ‘모범적인 입양인’에 속했다.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교사였다. 그렇지만 내면의 공허함을 극복할 수 없었다. 버려졌다는 박탈감과 상실감이 그의 생애 내내 따라붙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던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끝에 결국 생을 마감했다. 
같은 입양인이자 소중한 친구를 잃은 트렌카 작가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폴의 입양 과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요. 폴은 한국에 부모님이 모두 있었던 사람이에요. 고아가 아니었고 자기 호적이 있었어요. 자기 이름에 엑스(X)자가 쳐져 있는 호적과, 국적이 박탈된 기록을 받아들었을 때 그의 눈이 어떻게 떨렸는지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모두가 부러워 할 조건을 가졌지만 살아갈 힘이 나지 않았던 거에요. 그가 그런 선택을 할 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게 저는 너무 슬프고 죄책감이 듭니다”
한국식 국제입양, ‘주문 후 배송’ 시스템
전홍기혜 기자는 “한국인으로서 이 문제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것에 대해 반성했다”는 고백으로 말문을 열었다.

▲ 샌프란시스코로 입양된 아동 97명이 특별기를 통해 이송되는 장면. 비행기 좌석을 치운 자리에 종이로 만든 박스를 배치하고 아이들을 눕히고 중간 중간 아이들을 돌보는 위탁모들이 앉았다. ⓒ중앙입양원(홀트아동복지회 제공)

그는 강렬한 사진 한 장을 띄웠다. 흑백사진 속에는 돌도 안 됐을 법한 아기들이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다. 마치 잘 선별된 수출품 같았다. 전홍 기자는 “취재하면서 처음 본, 가장 충격적인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1950년대 전세기를 태워 아기들을 집단 입양 보내던 장면입니다.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전세기 20여 편을 띄워 한번에 100명 정도의 아동을 집단 입양 보냈어요. 그 과정에서 5명이 죽고 수십 명이 전염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긍정적으로만 그려지는 국제입양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보자 할 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에요”
한국식 국제입양의 틀은 해리 홀트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리입양제도’라고 부르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다.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가 입양아동의 출생 국가에 오지 않고도 국제입양이 가능하다. 입양아동의 출생 국가에서 이뤄져야 하는 모든 절차를 대리인이나 대리하는 기관이 대신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양부모는 입양아동을 수용국 공항에서 인수인계 받음으로써 국제입양이 이뤄진다.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가족관계를 맺기 보다는 ‘주문 후 배송’받는 방식에 가깝다. 입양의 모든 절차를 국가가 아닌 입양기관과 개인들 간의 계약 형태로 체결하는 식이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모두 ‘입양특례법’ 하에 합법적으로 이뤄진 행위였다.
국제입양은 하나의 거대한 국가사업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사무처장 ⓒ프레시안(최형락)

책의 공동저자인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사무처장은 보건복지부 담당 국장으로 재직 당시 처음 이 국제입양 문제를 접했을 때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며 “수십 년 관행이라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국제입양된 아동은 지금까지 50만 명 정도로 추정돼요. 그중 20만 명이 한국아동인 셈이죠.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국제입양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인 나라가 아니고서야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없어요. 아동이 부모한테 분리될 수는 있지만 국가에서 분리된다? 국가가 나서서 이 부분에 특화된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법과 제도의 문제로 넘어갔다. 한국은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을까. 아니, ‘나라 밖으로 내몰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아이들 파는 나라>에 그 실마리가 나온다. ‘1980년대 아동 한 명의 총 입양비용은 5000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면서 연간 약 15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게다가 아이를 돌보는 복지비용을 줄여주고 한국 정부의 강박 관념인 인구 통제에도 도움을 준다. 고아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제도 해결된다.
여전히 헤이그 협약에 가입하지 못한 나라
헤이그국제사법회의는 1988년 총회에서 국제입양 되는 아동들을 위한 ‘헤이그국제입양협약’을 만들었다. 한국이 매해 7000-8000여 명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내던 시기였다.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외신은 출생아동의 1%가 해외로 입양되는 한국의 상황을 보도하며 “아동 수출 국가”라고 비판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 협약은 한국 때문에 만들어진 거나 마찬가지에요. 한국은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당사국도 아니었는데 이 협약을 만들 당시 초청됐어요. 1980년대에 한국이 일으킨 국제입양 사고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죠. 당시 한국은 한 해에 8000명 가까운 아동을 국제입양 보냈는데 한 달에 500명은 보냈다는 말입니다. 입양 절차가 제대로 갖춰졌을 리가 없죠”라고 설명한다.
헤이그국제입양협약은 입양이 이뤄질 때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인 방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우선 원가정에서 보호할 것을 원칙으로 하며 원가정의 보호가 어려울 때 국내에서 보호 가능한 가정을 찾고, 국제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제입양은 민간 입양기관이 아닌 공적 당국에서 관장할 것으로 규정한다.
한국은 1993년 협약문 합의 시 서명대상국이었다. 현재 헤이그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100개국에 육박한다. 그러나 역사상 최대 아동 송출국인 한국은 아직도 헤이그협약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부터 가입을 약속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동의 출생부터 복지에 관한 법을 전부 뜯어고쳐야 한다. 입양기관들의 반발도 남아있다.

▲전홍기혜 기자가 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 씨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북토크가 열린 이날은 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 씨가 대한민국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낸 소송의 첫 재판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 파는 나라>의 앞부분 프롤로그에 그의 사연이 자세히 소개된다. 기형적인 입양제도로 인해 그는 미국에 입양된 지 38년 만에 불법체류자로 추방됐다. 미국에서는 ‘본국추방’이라고 했지만 세 살 때 입양된 그에게 한국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이었다. 미국에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그는 자신의 처지를 “자살로 내몰리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크랩서 씨는 2017년 카지노사이트 인터뷰에서 “저는 태어난 가정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됐습니다. 이제 내가 만든 가족으로부터도 강제로 떨어졌어요”라고 말했다. 65년 전 한국이 만들기 시작한 비극은 현재 진행 중이다.

▲13일 서울 마포구 디어라이프 북카페에서 <아이들 파는 나라> 북토크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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